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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명당 이야기
작성자 문화홍보담당관 등록일 2002.10.08 00:00
조회수 8,165
구술자 :최성래(崔成來) 외 여러분
조사일 :1983년 1월
조사자 :광양유학생회

바로 저기 그런깨 이 부저리 뒷산에 있는 뫼가 바로 범명당이여. 범은 호랑이고 명당은 뫼자리 좋은 곳이 명당 아닌가 범명당을 효자뫼라고 허지. 지금으로부터 한 300년전 사람인 의령 남씨 남만갑(南 萬甲)부친의 뫼인디 만갑의 지극헌 효성에 범이감동을해서 뫼자리를 갤차조따 해서 범명당이지. 이 뫼가 생기게 된건 이렇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만갑의 조부였던 응복(凝福)이 진주성 싸움에 참전 했다가 죽자 그 아들인 두연(斗連)이 우국충정과 부친에 대헌 복수심에서 자기도 진주전에 나갈라고 했으나 이미 진주성이 함락되어뿌리자 옥룡 중흥산성에서 왜병을격퇴하던중에 자기도 죽었어.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만갑은 어린나이에 수백리 길인 장성에서 모친을 뫼시고 이곳에 와서 부친의 유해를 거두고자 했으나 전란후 민생고가 극도에 달허던때라 이의 효심을 도와주는이가 없자 우선 생계유지를 위하여서 이 봉강 부저리 마을에서 머심살이를 허문서 모친은 딱재라는 고개를 넘어 옥룡면 상산마을에다 모셨드라네, 이 고개는 험허기로 이름이 나서 낮에도 맹수가 나타났는디 만갑이는 밤이되먼 자기에 주는 밥을 절반은 어머니 모가치로 냉겨두고 먹은 담에 밤이되먼 이 재를 혼자 넘어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수년간 계속하던중 하루밤에는 큰 호랭이가 나타나 길을 가로 막자 기겁을 하여 달아나지도 못하였다네. 만갑은 죽기전에 용기를 내서 「꼭 나를 잡아 묵어야겠느냐」고 했드라네. 그러자 그 호랭이가 고개를 저음시롬 입을 크게 벌리는디 목구녕에가 여자 비녀가 걸려 있드라네. 그래 그걸 꺼내 주었드니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번이나 허고 등에 타라는 시늉을 허드라네. 만갑은 여기다 부친 장사를 지내라는 뜻으로 알고 부친을 여그다가 모셨드라네. 이런 연유로 법명당 혹은 효자묘라고 허지 이런연유로 범명당 혹은 효자묘라고허지. 지금도 후손인 남윤우(南允佑) 란 사람이 광주에 살면서 비를 돌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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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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