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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토문화유산

진월 송금리 김대례 공신비

임진왜란

  • 주소 (57710) 전남 광양시 진월면 신송길 49(제각)
  • 문화재지정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
진월 송금리 김대례 공신비 사진1
상세정보

공의 이름은 대례(大禮)이고, 자는 여대(汝大)이며, 공은 157333일 경기도 양주군 율복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광양현 월포면 송금리로 이사하였다.

 

공의 나이 18세 되던 해에 몸이 보통 사람들 보다 월등하게 장대했는데 사나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필 구구하게 붓과 먹속에 있는 시()와 서()를 일삼고 있겠는가?” 라며 붓을 내던지고 무과에 등재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의의 뜻있는 선비들은 마땅히 갑옷을 두르고 활과 칼을 겨누며 힘을 모아 

왜적들을 토벌해야 할 것이다.” 말하고 그의 맏형 사례(師禮)와 함께 충무공 이순신 막하로 들어가니 이충무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공은 충무공을 받들어 노량, 남해, 순천, 왜교성, 섬진강 하구 및 묘도에서 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는데

섬진강 하구 방어차단의 임무를 받고 앞장서 싸우다 왜군 선봉대와 며칠의 공방전 끝에 적군의 총에 맞아 

1598825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후 조정에서는 공을 선무원종 공신록에 올리고 호남절의록에 등재하여 녹권(錄券)을 하사하였다

이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 공의 10세손 학조가 행적을 면밀히 조사했는데, 전사시 초혼(招魂)장을 지냈던 

현재 여수시 묘도를 찾아 묘석 봉분을 확인하고 선친묘가 있는 광양시 진월면 송금리 분상(奔喪)에다 엄숙히 이장하였다.

 

공의 행적을 금석문(金石文)에다 새기고자 김씨 문중과 관내 유림(儒林)들의 협조를 얻어 

16769월 공신각을 건립하였으며, 광양시에서는 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774일 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로 관리 보존하고 있다

진월 송금리 김대례 공신비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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