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명현 신재 최산두
이 옥홀(玉笏)은 조선 중종 8년(1513)에 최산두에게 하사된 유물이다.
'일인유경보명유신(一人有慶寶命維新)'이란 글이 음각되어 있다. 임금에게 선(善) 있으면 보명[天命]이 새로워져 사직(社稷)이 영원하리라는 뜻이다. 위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청옥으로 만들어져 있고 글자를 새긴 후 금니를 덧칠하였다.
신재 최산두(1483~1536) 선생은 백운산 봉황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호남삼걸 중 한 사람으로 봉강 부저리에서 출생하였다. 하서 김인후, 미암 유희춘과 같은 대유학자를 계보로 한 호남 성리학의 거두이다.
37세에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함께 화순 동복현에 유배되었고 51세가 될 때까지 14년 동안 머물렀다. 유배가 풀린 후에도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면서 후학 양성과 창작에 몰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