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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유산

광양송천사지 회은장로비

조선중기 승려 회은의 행적

  •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신재로 산 196-1
  • 전화번호061-797-3333
광양송천사지 회은장로비 사진1
요약정보

회은장로(1587~1672)비에 새겨진 비문에 의하면, 그의 조상은 전북 남원에 살았고, 원래 성은 기씨이며, 이름은 응준, 호는 회은이라고 한다. 어려서 출가하여 옥지노사(玉遲老師) 아래에서 승려의 생활을 하였으며,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 승병에 가담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이 비는 비신과 이수(이首 : 비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를 갖추었고, 대좌는 땅속에 묻혀 있었으나 지상으로 드러냈다. 비신 전체 높이는 2.92m로서 이수는 장방형으로 앞면에는 2마리의 용과 가운데에 여의주가 조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용, 게, 개구리, 자라 등이 조각되었다.

 

 

비신 상단에는 "회은장로비명(悔隱長老碑銘)"이라 쓰여 있다. 비문의 내용은 회은장로의 출생과 출가후의 활동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비신 뒷면에는 당시 비 건립을 추진했던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회은장로가 입적한 5년 뒤에 세운 것이다.

상세정보

조선 중기 승려 회은장로(1587~1672)를 기리는 비문으로 회은장로의 출생과 출가 후 활동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회은장로의 성은 기씨, 이름은 응준, 호는 회은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했고, 병자호란 때 승병으로 활약하다가 후에 승병대장이 되었다.

송천사 터에 있는 비는 받침돌 위에 높이 2.92m의 비신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모습이다. 머릿돌 앞면에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다투는 장면이 조각돼 있다. 뒷면에는 용을 비롯해 게, 개구리, 자라 등 여러 동물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신 상단에는‘ 회은장로비명(悔隱長老碑銘)’이라 쓰여 있다. 비문에는 순찰사와 광양현감이 송천사 승려들과 함께 숙종 3년(1677년)에 세웠다고 적고 있다. 회은장로가 입적한 5년 뒤이다. 불교를 억누르던 당시에 승려를‘ 장로’라 부르고, 관리들이 앞장서서 비를 세운 보기 드문 일이었다. 비의 이름을 법명이 아니라 호를 쓴점도 승려보다 승병 대장으로 활약이 두드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양송천사지 회은장로비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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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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