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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김시식지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

  •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 김시식지1길 57-6
  • 전화번호061-760-8370
  • 문화재지정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
광양김시식지 사진1
요약정보

이 제각은 우리나라 최초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1606-1660)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김여익은 인조 18년(1640년) 태인도에 들어와 최초로 해의(海衣)를 양식하였다. 해의라는 명칭으로 김이 소개된 문헌은 [경상도지리지(1424)],[동국여지승람(1478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등으로 울산, 동래, 영일, 진도, 순천, 광양 등지의 토산편(土産編)에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광양 등지에서 진상된 해의가 양식에 의한 것인지 자연산이지 분명하지 않고 그 이름도 해의, 김, 감곽, 감태로 불려왔기 때문에 그 종류와 생산양식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 태인도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하였다는 기록이 비문, 등초(騰抄)로 남아 영모재에 보관되어 있어 태인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김양식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김여익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여준 수사(水使)를 따라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인조 18년(1640년)에 장흥를 거쳐 이곳에 들어와 해의를 시식하며 살았다 한다.

 

김여익이 김양식법을 고안한 것은 인조 18년에서 현종 원년(1660년)의 시기이며 완도 조약도의 김유몽, 완도 고금면의 정시원의 해의 시식설보다 빨리 시작된 셈이다. 또한 후손들은 해의를 김이라 부르는 것은 해의의 양식을 최초로 창안한 김여익의 성씨를 본딴 것이라고 전한다.

 

상세정보

영모재(永慕齊)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金汝瀷·1606~1660)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전남 영암군 서호면 몽해에서 태어난 김여익은 인조 때인 1640년 태인도로 이주해 김을 양식했다. 태인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라는 사실은 그의 무덤 앞에 세운 푯돌인 묘표(墓表)에 기록됐고, 그 자료가 영모재에 보관되어 있다.
 

광양현감 허심(許?)이 1714년 세운 묘 표 에 는‘시 식 해 의 (始殖海衣)’‘우발해의(又發海衣)’라는 글귀와 함께“ 김 양식 법을 창안하여 김을 처음 양식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바다의 옷’이라는 뜻의 해의(海衣) 는 김을 말한다.


김은 김여익을 기려 그의 성씨를 붙인 것이라고 하며 광양 사람들은 김을‘ 해의’라고도 부른다 원래의 김 양식지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사라졌고, 영모재만이 그의 공을 기리며 김 문화의 발상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 지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1987.6.1.)
  • 소재지 : 광양시 태인동 829-1외 3필지
  • 규 모 : 3,104㎡

 

 

광양김시식지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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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김여익(金汝瀷)은 영암군 학산면 몽해(夢海)에서 태어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자 의병을 일으켜 종형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자 돌아온 뒤 고향을 떠나 장흥(長興) 동백동(冬栢洞)을 거쳐 1640년 태인도(太仁島)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하루는 그가 섬 앞의 바다에 나갔는데 바닷가에 떠내려 온 밤나무 가지에 그동안 보지 못한 해초가 붙어 이를 뜯어 맛을 보니 부드럽고 단맛이 있어 이듬해 가을 밤나무, 소나무, 시누대 등의 가지를 마을 앞 애기섬 주변의 개펄에 꽂아 해의(海衣)를 양식하였다 한다.

 

이를 임금님께 진상하여 수라에 올렸는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 왈 이름은 모르옵고 광양현에 사는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것이라고 하자, 임금님께서 그 사람의 성을 본떠 김이라고 불러라 해서 오늘날까지 김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