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중흥산성
도 기념물 제178호(1999.12.30.)
옥룡면 운평리에 자리한 중흥산성은 해발 278.2m에서 406.4m에 이르는 6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면서 계곡의 경사면을 최대로 이용하여 만든 포곡형(包谷形: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릉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성안에 넓은 계곡을 포함하고 있음) 토성이다.
축성시기는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시대 초기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고, 왜군의 습격을 받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온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3,400m, 성벽 너비 9~15m, 외벽 높이 3.05m, 내벽 높이 1~2m, 성내 면적 488,823제곱미터 인데, 지형이 완만한 동남쪽에는 저수지 둑을 따라 길이 240m의 내성 역시 토성으로 축조되었다.
1998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정밀지표조사에서 고려시대 기와류와 문(門)이 있었던 흔적, 건물지 등을 확인하였다.
중흥산성은 해발 278~406m의 봉우리 6개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아우르며 쌓은 토성이다. 토성의 외벽에 3단 정도의 석축을 보강한 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기 또는 고려시대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성이 위치한 곳은 산 전체가 천연 요새이자 구례, 남원, 하동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왜군의 습격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산성은 광양에서 가장 큰 산성이며 유일한 토성이기도 하다. 위에서 보았을 때 동서로 긴 네모꼴을 하고 있으며 산성의 서북쪽이 비교적 높고 남동쪽이 낮은 상태이다. 3.4km 길이의 외성과 240m 길이의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쌓은 판축법이 사용되었다.
내성 안쪽에는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현재는 중흥사(中興寺)라는 절이 있으며 창건 때 조성된 삼층석탑이 경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