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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관광지

광양매화마을

봄을 알리는 첫 동네 매화마을, 새하얀 매화꽃 물결과 그윽한 매향에 취하다

  •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목길 34-2
  • 전화번호061-797-3333
광양매화마을 사진1
요약정보

 

 

 

 


 

 

상세정보

해마다 3월이 오면 광양 섬진강변 다압면을 비롯한 시 전역은 기나긴 겨울을 지낸 매화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남녘의 첫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천지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3대에 걸쳐 매화를 가꾸어 온 명인의 혼은 2,500여개의 전통 옹기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며, 최근에는 계절마다 맥문동, 구절초 등 야생화가 활짝 피어 사계절 관광지와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 광양시는 봄꽃의 첫 만남, 매화향기 가득한 그곳, 새하얀 눈꽃이 가득한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해마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약 10일간 '광양매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3월이 오면 광양 섬진강변 다압면을 비롯한 시 전역은 기나긴 겨울을 지낸 매화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남녘의 첫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천지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광양매화축제는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하고 풍성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광양매화마을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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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참고해설_박양자 해설사》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이야기

 

매화만큼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꽃이 어디 있을까요?

 

꽃말 또한 고결한 마음, 인내, 청결, 정조, 충실입니다.

 

그 중에서도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548년, 조선 최고 학자 퇴계 이황(1501~1570년)선생이 단양 군수(사또)로 부임합니다. 선생의 나이 48세 꽃 중년 이었습니다.

선생은 부임 전후 몹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열여덟 살 관기 두향과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두향은 빼어난 미모에 글과 시 거문고에 능했다고 합니다.

 

마흔여덟 퇴계 선생의 마음을 흔든 두향은 매화를 무척 좋아했으며 퇴계 선생이 매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던 두향은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던 것입니다. 두향이 퇴계 선생에게 매화를 선물하자 청백리 퇴계는 그것도 뇌물이라 생각해 받기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두향은 “매화는 고상하고 격조가 높으며 향기로운데다가 엄동설한에도 굽힘이 없는 기재를 가졌다”며 “우리 고을도 그렇게 잘 다스려 달라”고 설득하자 퇴계는 흔쾌히 받아 드렸습니다.

 

이 후 두 사람은 산수가 수려한 주변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고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타며 함께 단양팔경을 완성해 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퇴계 선생이 단양 군수 10개월 만에 그만 이별을 맞습니다. 퇴계 선생은 자신의 친형 온계 이해가 충청도 관찰사(도지사)로 부임하자 한 지역에서 상하 관계로 일하면 나랏일이 공평함을 잃을 수도 있다하여 이웃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자원합니다. 이후 둘은 영영 만날 수 없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떠나자 두향도 후임 사또에게 자신이 다른 남자를 모실 수 없음을 청하고 관기에서 나와 고향 마을 강 맞은편 강선대 옆에 초가를 짓고 퇴계 선생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생활합니다. 단숨에라도 달려가 만나고 싶었지만 공직에 있는 선생을 위해 그럴 수도 없음을 아는 두향.

 

퇴계 선생 역시 두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가끔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풍기에서도 1년만에 병을 이후로 사직하고 안동으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며 살았습니다. 두향과 떨어져 산 지 20여년, 두향이 선물한 매화를 보면서 “저 매화나무에 물 잘 주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두향은 퇴계 선생의 부고를 듣고 며칠을 날 밤 새며 퇴계 선생에게 달려갔지만 남몰래 빈소만 바라보고 통곡하며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을 굶다가 집 근처 강선대에 올라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너무나 애절한 러브스토리입니다. 무릇 서른 살 나이 차를 넘어 조선 최고의 학자와 관기와의 짧지만 긴 여운, 오늘날 우리도 이런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면 참으로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